제주도 혼자 2박3일 다녀온 솔직 후기, 생각보다 별로였던 순간도 있었어요
사실 처음엔 좀 무서웠어요. 혼자 비행기 타는 것도, 혼자 밥 먹는 것도. 제가 서른 넘도록 한 번도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난 10월, 회사에서 진짜 너무 지쳐서 충동적으로 김포-제주 편도를 끊어버렸습니다. 4만 9천원이었어요. 그 가격에 홀린 거죠.
1일차, 공항에서부터 멍해졌던 오후
화요일 오전 10시 비행기였는데, 공항에 너무 일찍 가서 두 시간을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혼자 다니니까 시간 감각이 이상해지더라고요. 일행이 있으면 "야 뭐 먹을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혼자면 그냥 멍 때리는 시간이 생겨요. 근데 그게 또 좋았습니다. 진짜 오랜만에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제주공항에 내리자마자 했던 건 렌터카 픽업. 경차로 빌렸는데 하루에 3만 5천원 정도였어요. 보험까지 합쳐서요. 혼자 다닐 거면 경차로 충분합니다. 진짜요. 큰 차 빌렸다가 주차 스트레스 받느니 작은 차가 백배 낫더라고요.
첫 일정은 애월의 한 카페였어요. 이름은 굳이 안 적을게요. SNS에서 너무 유명해서 가봤는데, 사람이 진짜 많았습니다. 혼자 가니까 더 어색했어요. 2인용 테이블에 혼자 앉아서 아메리카노 마시는데, 옆에서 커플들이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세 번이나요. 세 번. 이게 혼행의 현실입니다. 사진사 되는 거.
저녁은 협재 근처 흑돼지집. 1인분도 시켜주는 곳을 미리 검색해서 갔어요. 이게 진짜 중요해요. 제주도는 의외로 1인분 안 받는 식당이 많거든요. 혼자 먹는 흑돼지는 어떨 거 같으세요? 음... 솔직히 좀 외로웠어요. 맛은 있었는데, 고기는 역시 누구랑 같이 먹어야 더 맛있나 봐요.
2일차, 동쪽으로 무작정 달린 하루
아침 7시에 눈을 떴어요. 협재에서 묵었는데,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 4인실에 저 혼자였습니다. 비수기라 그런가 봐요. 1박 2만 8천원. 시설은 그냥 그랬어요. 욕실 수압이 약해서 머리 감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차 끌고 동쪽으로 갔어요. 목적지는 없었어요. 그냥 1132번 일주도로 따라서 달렸습니다. 이게 혼자 여행의 진짜 묘미예요. 누구 눈치도 안 보고 가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거. 김녕 어디쯤에서 바다가 너무 예뻐서 30분을 그냥 앉아 있었어요. 모래사장에 신발 벗고. 10월인데도 햇볕은 따뜻하더라고요.
성산일출봉은 안 갔어요. 사람 많을 거 같아서. 대신 종달리 쪽 작은 카페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브런치 메뉴 하나에 1만 5천원. 비싸긴 한데 뷰가 미쳤어요. 창밖으로 우도가 보이는데, 진짜 그림 같았습니다. 혹시 종달리 가보신 분 계세요? 거기 진짜 조용하고 좋아요. 성산만큼 안 알려져서 그런가.
오후엔 비자림. 입장료 3천원. 1시간 정도 걸으면서 진짜 많이 울었어요. 갑자기요. 왜 울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나무 사이를 걷는데 눈물이 났어요. 회사에서 쌓였던 게 한 번에 터진 건지. 혼자라서 마음껏 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누가 있었으면 못 그랬을 거예요.
저녁은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김밥이랑 맥주 사 와서 방에서 먹었습니다. 호화로운 저녁 아니어도 괜찮더라고요. 창문 열어두니까 파도 소리가 들렸어요.
3일차, 돌아가기 싫었던 마지막 날
마지막 날은 좀 우울했어요. 솔직히. 짐 싸는데 벌써 서울 생각나고, 출근 생각나고. 체크아웃하고 한라산 쪽으로 갔는데, 1100고지까지만 갔다 왔어요. 등산은 무리고, 그냥 드라이브만. 단풍이 막 시작될 무렵이라 색이 진짜 예뻤습니다. 빨간색이라기보다 주황색에 가까운, 그런 가을색이요.
점심은 제주시내 고기국수. 9천원. 줄 서서 먹었는데 솔직히... 제 입맛엔 좀 짰어요. 호불호 갈릴 맛입니다. 근데 혼자 카운터석에 앉아서 후루룩 먹는 그 기분은 좋았어요. 일본 영화 주인공 된 느낌?
공항 가기 전에 동문시장 들러서 귤이랑 오메기떡 좀 샀습니다. 가족 줄 거랑 회사 동료들 줄 거. 이상하게 혼자 여행 가면 선물은 더 많이 사게 돼요. 미안한 마음인지 뭔지.
비행기 안에서 창밖 보면서 생각했어요. 다음에 또 올 수 있을까. 이번엔 누구랑 같이 올까. 아니면 또 혼자 올까. 사실 혼자 와서 좋았던 순간이 8할이었어요. 외로웠던 순간도 분명 있었지만, 그 외로움마저도 필요했던 것 같아요.
혼자 가보려는 분들께 솔직히 말씀드리면
가세요. 그냥 가세요. 너무 계획 세우지 마시고요. 제가 미리 짠 계획 중에 절반은 안 지켰어요. 차라리 숙소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그날그날 기분 따라 움직이는 게 훨씬 좋았습니다.
예산은 2박 3일 기준으로 항공권 빼고 30만원 정도 들었어요. 렌터카 10만원, 숙소 6만원, 식비 10만원, 카페랑 입장료 등등 해서요. 생각보다 많이 안 들죠? 비수기에 가시면 더 아낄 수 있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1인분 받는 식당 리스트는 꼭 미리 저장해두세요. 배고픈데 식당 거절당하는 그 서러움, 겪어보면 압니다. 저는 둘째 날 점심에 한 번 거절당했어요. 갈치조림집이었는데, 사장님이 미안하다고 하시는데도 진짜 마음 상하더라고요.
혹시 지금 너무 지치셨다면, 진짜로 그냥 다녀오세요. 제주도가 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잠깐 도망갈 곳은 되어줍니다. 저한테는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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