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여름, 사람 없는 곳만 골라 다녀봤습니다 (3박 4일 솔직 후기)
사실 저는 강원도를 거의 매년 갑니다. 여름이면 더더욱이요. 그런데 작년 8월 초에 속초 갔다가 진심으로 후회했어요. 대포항 근처 도로에서 1시간 반을 그냥 서 있었거든요. 차 안에서 에어컨만 빵빵 틀어놓고 멍하니 앞차 번호판만 봤습니다. 그때 결심했죠. "내년엔 절대 유명한 데 안 간다."
그래서 올해는 좀 다르게 짜봤어요. 3박 4일 동안 사람 적은 곳, 그러면서도 강원도다운 곳만 골라서 다녀왔는데, 의외로 너무 만족스러워서 이렇게 글로 남겨봅니다.
첫째 날, 인제 자작나무숲 말고 '방태산'
다들 인제 가면 자작나무숲 가시잖아요. 저도 두 번 가봤고요. 근데 이번엔 일부러 방태산 자연휴양림으로 갔습니다. 인제 IC에서 한 40분쯤 더 들어가야 해서 좀 귀찮긴 한데, 그게 오히려 좋더라고요.
여기 적가리골 계곡이 진짜… 뭐랄까. 물이 발목까지만 와도 시려요. 한 8월 6일에 갔는데, 기온은 30도였는데 계곡 옆에 앉아 있으면 긴팔 입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사람도 별로 없어서 평일 오후 2시쯤 갔는데 우리 가족 포함해서 다섯 팀? 그 정도였어요.
이단폭포까지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왕복 1시간 반 정도. 등산이라고 부르기엔 가볍고, 산책이라고 하기엔 좀 헉헉대는 그런 느낌이요. 중간에 데크길도 잘 되어 있어서 운동화만 신으면 충분합니다. 샌들은 비추예요. 제가 신고 갔다가 발가락 까졌습니다.
둘째 날, 양양 바다는 '죽도해변' 말고 그 옆
양양 하면 다들 죽도, 인구, 하조대 가시죠. 서핑 좋아하시면 당연히 가셔야 하고요. 근데 저는 서핑 못 해요. 그냥 바다 보고 발만 담그고 싶은 사람.
그래서 찾은 곳이 '잔교리해변'입니다. 죽도에서 차로 5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어요. 진짜 작아요. 해수욕장이라기보다 그냥 동네 바닷가 같은 느낌. 파라솔도 없고, 편의점도 한참 걸어가야 있고. 근데 그게 좋은 거예요.
오전 9시쯤 도착했는데 서퍼 두세 명만 있고 가족 단위 손님은 저희뿐이었어요. 모래도 곱고, 물도 맑고, 무엇보다 조용했습니다. 파도 소리가 진짜 파도 소리로 들리는 곳이요. 옆에서 누가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 안 트는 곳. 이게 얼마나 귀한 건지 여름 바다 가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점심은 근처에서 물회 먹었는데, 사실 가게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요. 죄송합니다. 노부부가 하시는 작은 집이었는데 물회가 만 오천 원이었고, 양이 진짜 많았어요. 다음에 가면 또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잔교리 들어가는 길에 식당 두세 개밖에 없어서 못 찾을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셋째 날, 정선의 새벽 — 이게 진짜 하이라이트
여러분, 혹시 강원도에서 새벽 5시에 산속에 있어 보신 적 있나요? 저는 이번에 처음이었는데요. 정선 화암동굴이나 레일바이크 말고, 그냥 민둥산 자락 펜션에서 하룻밤 잤습니다.
새벽에 잠이 깨서 — 사실 시차 적응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4시 40분쯤 눈이 떠졌어요 — 베란다 문을 열었는데, 안개가 산 중턱에 띠처럼 걸려 있더라고요. 사진을 찍긴 했는데 실제로 본 거랑 너무 달라서 좀 허무했습니다. 핸드폰 카메라의 한계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펜션 주인분이 아침에 토마토를 한 바구니 주시면서 "이거 우리 밭에서 딴 거예요" 하시는데, 그게 또 어찌나 맛있던지. 진짜 시큼하고 단 맛이 동시에 났어요. 마트에서 사는 토마토랑 비교가 안 됐습니다.
낮에는 아우라지 쪽으로 갔어요. 정선 5일장이 마침 열리는 날이어서요(2, 7로 끝나는 날에 합니다). 메밀전병이랑 콧등치기국수 먹었는데, 콧등치기는 호불호 갈릴 것 같아요. 면이 진짜 굵고 거칠어서 후루룩이 안 되거든요. 저는 좋았는데, 같이 간 친구는 반만 먹고 남겼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횡성, 그리고 느낀 점
마지막 날엔 그냥 횡성휴게소에서 한우 먹고 올라오려고 했는데, 시간이 좀 남아서 횡성호수길 5코스를 30분만 걸었어요. 풀코스는 9km 넘는다는데 그건 다음 기회로요. 호수 옆으로 데크길이 잘 되어 있어서 부모님 모시고 가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번 여행하면서 든 생각인데, 강원도가 넓잖아요. 정말 넓어요. 근데 사람들이 가는 곳은 진짜 몇 군데에 몰려 있더라고요. 속초, 강릉, 양양 일부 해변. 거기서 30분, 1시간만 더 들어가면 사람 없고 풍경 좋은 곳이 수두룩한데 말이죠.
물론 유명한 데가 유명한 이유는 있어요. 편의시설 좋고, 맛집 검증되고, 사진도 잘 나오고. 근데 여름 휴가가 휴가답지 않게 끝나신 경험이 한 번이라도 있다면, 내년엔 살짝 비껴서 가보시는 거 어떠세요. 저는 올여름도 또 이런 식으로 갈 생각입니다. 이번엔 평창 쪽 골짜기를 좀 뒤져볼까 해요. 혹시 추천하실 곳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진심으로요.
댓글
댓글 쓰기